작품보기

APAP4

제목, 글쓴이, 날짜의 내용이 있습니다.
정충모 안양 메모리타워
알루미늄, 각 900mm × 1100mm LED 조명.
4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 커미션
작가 제공



정충모, <안양 메모리타워> 설치 전경, 2014. 사진: 홍철기, 김중원.
 
해방 이후부터 1970년대 말까지 많은 기업과 공장들이 안양에 둥지를 틀게 되면서, 각 지방에서 돈을 벌기 위해 안양으로 이주한 세대들과 그 시대의 사람들은 안양을 쉴새 없이 돌아가는 공업 도시로 기억한다. 활명수, 박카스, 유판씨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이른바 국민 약품들이 모두 안양 만안구에서 생산되었을 정도로 이곳은 공업화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지역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안양 지역의 산업 구조는 제조업과 같은 이차 산업보다는 서비스업종으로 빠르게 변화했고, 대규모 주거 단지가 들어섰다.
김중업박물관에 잔존하는 옛 유유제약의 굴뚝 또한 비슷한 변화를 경험했다. 오랜 시간 동안 제 역할을 수행했던 굴뚝은 2006년에 제천으로 공장이 이전된 후부터 작동을 멈춘 상태로, 안양시가 옛 공장의 부지를 구입하고 또 이를 안양문화예술재단의 매입하여 2014년 복합문화공간으로 개관하는 과정들을 함께했다. 다시 말해 굴뚝은 옛 유유제약 터가 겪은 시간의 흐름에 대한 상징물인 셈이다.
작가 정충모는 굴뚝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안양에서 태어나 외지에서 청년기를 보내고 1980년대 중반 다시 안양으로 돌아온 작가이다. 평촌 신도시가 형성되기 이전의, 공업 도시로서의 안양을 기억하는 작가는 더 이상 자신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굴뚝에 새로운 역할을 부여한다. 굴뚝의 형태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안양’, ‘공공예술’, ‘유유산업’, ‘김중업’이라는 단어의 자음으로 된 조형물을 몸체에 붙이고 최상층 부분에는 LED를 이용해 조명의 기능을 할 수 있게 제작하였다. 조명은 저녁부터 새벽까지 주변의 공원을 밝히는 역할을 한다.
초기의 <안양 메모리타워>에는 기존 굴뚝에 쓰여있던 “㈜유유”라는 글자가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4회 APAP는 한 지역에 오십 년 이상 머물렀던 유유제약의 굴뚝과 그를 활용한 작업이 함께 맥락을 형성할 수 있기를 바랐으나, 굴뚝산업의 폐해나 공업 도시의 기억을 상기시킨다는 인근 주민들의 의견에 따라 글자는 지워지게 되었다. 글자를 지움과 함께 굴뚝의 전반적인 도색도 새로이 했다.
창닫기